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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18 07:23 배우며...주님과

v.29 큰 무리가 예수를 따르더라 vs. v.34 그들이 예수를 따르니라


큰 무리는 예수님을 자신의 관점으로 따랐다. 그들의 욕심으로 따르기에 예수님을 따르기에 자신의 목적에 맞지 않는 일이 발생하는 것을 원천 차단했다. 그래서 두 맹인의 외침을 외면하며 조용히 하라고 한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내 마음과 생각을 내려 놓는 것이고, 온전히 주님을 따르는 것인데, 욕심과 아집으로 내 예수를 만드는 것은 주님의 생각과 다르고, 자신의 길을 예수님에게 강요하는 것이다.


그들, 맹인들은 길 가에 앉았다가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소식을 듣고, 소리지른다. 군중들이 소리 지르며 조용히 하라고 했지만, 그들의 유일한 희망은 예수님이었기에 더 크게 소리 지른다.

그들의 외침은 주님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또한 군중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예수님이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의 눈을 밝게 하셨다.


그들이 예수를 따른다. 이들은 제자의 길로서 예수를 따른다. 군중들이 가는 욕심의 길과는 다르다.

군중들은 자신의 욕심과 이기심으로 예수를 따르지만, 그들은 예수님이 다윗의 아들이고, 메시야였기에 순종의 길, 제자의 길로서 예수님을 따른다.


오늘 나는 어떤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는가?

예수님을 이용하기 위한 따름인가? 아니면, 순종하기 위한 따름인가?


분명 예수님을 부를 때 도움을 주시지만, 그분을 이용하기 위한 따름은 제자의 따름이 아니라 욕심의 따름이다. 결국 나를 파멸에 이르기 위한 따름일 뿐이고, 그 결과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소리치게 한다.


주님 앞에 겸손히 오늘 하루를 살아야겠다. 순종하며, 주님의 주님 되심을 믿으며 오늘 하루도 살자!

posted by 하나님의 사랑 알바니아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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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28 01:38 배우며...주님과

마 14:13-21
예수님은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하게 여기십니다.
병자들을 고쳐주십니다. 그리고 저녁에 물고기 두 머리와 떡 다섯 개로 주린 배도 채워 주십니다.
예수님이 이적을 보이신 것보다 '불쌍히 여기심'에 눈길이 갑니다.

나는 얼마나 사람들을 불쌍하게 여기고 그들의 영혼에 관심을 갖고 있나 돌이켜 봅니다.
아직도 부족한 저는 세상의 관점으로 사람들을 볼 때가 많습니다.
불쌍히 여기는 것은 내가 더 낫고 풍족하기에 불쌍히 여기는 것이 아닌, 나와 같은 죄인이라는 것을 알기에 불쌍히 여기는 것입니다.
주님도 세상에 계실 때, '인자'로 칭하시며 당신이 완전한 인간으로서 세상에 사신 것을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아픔과 고통을 체휼하신 예수님이시기에 그분께 오늘도 나아갑니다.

오늘도 주의 품 안에서 살게 하소서!



TistoryM에서 작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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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09 05:36 배우며...주님과

며칠 전에 갑자기 떠오른 말씀은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 5:5)이다. 정말 갑자기 생각이 났다.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그냥 '온유한 자가 땅을 얻는구나!'라고 생각을 했을 뿐이었다. 좀 더 나아가면, '한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할 말씀!" 정도였다. 부동산을 좋아하는 한국 사람들이니... 


그런데, 내가 이 곳 알바니아에서 살아가며 이 땅을 정말 얻을 자격이 있나 생각해 보게 되었다. 아직도 내 생각과 내 마음과 내 주장이 살아 있고, 고집이 무척 센 상태이다. 성경이 말하는 온유한 자와는 동떨어진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렇구나! 나는 아직 온유하지 못하구나! 그러기에 이 땅을 주님께 드리지 못하고 있구나! 내 자신이 온유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 힘으로 온유할 수 있을까? 절대로 그럴 수 없음을 어제도 발견하고, 그제도 발견했다. 지금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면서도 내 힘으로는 부족함을 고백할 수 밖에 없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며 주님을 닮아가야 함을 생각하게 된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을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 11:28~30)


내가 주님을 닮아가지 않기에 마음이 온유하지 못했고, 겸손하지 못했다. 그리고 쉼도 없었다.

주님만 닮아가고, 주님만 따라가는 삶을 다시 한번 다짐한다.

내 고백은 "오직 주님만!"이다. 온유한 자로 오늘 하루를 승리하고 싶다.

posted by 하나님의 사랑 알바니아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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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25 23:44 배우며...주님과
(날마다 일어나는 전쟁...
 나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는 것...
 빛과 어두움의 전쟁...
 나에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날마다 날마다 주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면서
 믿음으로 한걸음씩 걸어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 생각의 습관 *********

아름다운 성품은 주님의 역사의 결과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습관의 결과입니다.

날마다 수없이 떠오르는
부정적인 생각, 분노의 마음,
염려의 생각, 판단하는 마음, 원망하는 마음들...

그러한 하나 하나의 생각들을
지속적으로 물리치고
주님의 생각을 선택하는
부단한 투쟁의 결과입니다.

아무리 밝아 보이는 사람이라도
어두운 상념이 강하게 공격하는 때가 있으며
아무리 사랑의 사람같이 보여도
강한 분노의 영이 사로잡아 올 때가 있습니다.

오직 십자가를 아는 자만이
그러한 싸움에서 승리하며
승리의 전리품을 얻게 됩니다.

본능적으로 자기 기질을 따라 사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악들을
끊임없이 주님께 드리고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보는 것은
날마다 이루어지는 하나의 전쟁이며
그것은 바로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는 것입니다.

빛과 어두움의 투쟁이 쉬운 것은 아니며
때로는 너무 힘들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를 의지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씩 믿음의 길을 걷다보면
그 길은 점점 넓어지며
조금 지나면 좀 더 쉽게
모든 상황에서 주를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그것이 생활화되고 습관이 되고
그렇게 날마다 걸어갈 수 있을 때
우리는 변화되며
천국의 영광에 좀 더 가까이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맑고 깊은 영성의 세계를 향하여 중에서-정원목사님>

posted by 하나님의 사랑 알바니아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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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13 01:19 배우며...주님과

재난의 현장을 인본주의가 아닌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라봐야...


일본의 대지진이 일어나기 전, 지난해 7월과 올해 2월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에서는 두 차례의 큰 강진이 있었다. 존더뱁티스트TV 대표이자 저널리스트인 앤드류 스톰은 자신의 칼럼 "재앙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재앙을 보는 그리스도인의 관점에 관한 의견을 제시했다.(편집자 주)


세계를 뒤덮는 대재앙이 거듭될 때 사람들은 종종 이런 질문을 한다 "하나님의 심판인가?" 아니면 "단지 자연적인 사건"인가? "아니면 이 두 요소가 함께 들어있는가?"


그리스도인은 재앙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봐야 하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누가복음 13장에 기록되어 있다.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눅 13:4-5)


이 말씀을 뉴질랜드의 크라이스트처치에 적용해볼 때, 이번 지진에서 죽은 사람들이 심판을 받은 것이라든가 혹은 더 큰 죄를 지은 죄인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나는 크라이스트처치가 이 나라의 다른 도시보다  죄를 더 지었다든가 덜 지은 것이 아니라고 담대하게 말할 수 있다.


엄청난 재난이 일어났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이 일로 인해 큰 충격에 휩싸였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더 큰 죄"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다. 마땅히 우리는 이 사건을 겪은 모든 사람을 향해 큰 긍휼을 품어야 한다.


나는 하나님께서 두 번의 크라이스트처치 지진을 통해 강하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영역은 교회를 흔들어 깨우는 것이라고 믿는다. 어떤 사람들은 크라이스트처치 도시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도시가 아니라 교회라고 생각한다.


서구사회에서 크라이스트처치라고 불리우는 대도시가 두 번의 대지진으로 강타당하는 것을 보았다. 또한 대부분 피해를 입은 건물이 교회인 것을 보았을 때 당신은 분명한 질문을 해야만 했다. "그리스도의 왕국을 그 분이 흔드는 일을 시작하심으로써 하나님이 그 분의 교회에 말씀하고 계시는가?" 우리는 앞으로도 더 많은 "진동"을 보게 될 것인가? 심지어 주요 성직자와 교회에서도? 나는 그렇게 믿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세계적으로 갑작스럽게 닥치는 재앙이 일상이 되어버린 세상은 마치 궁지에 몰리고 있는 것만 같다. 경제적, 정치적 소동도 이와 함께 급증하고 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고통이 더해지고 있다는 결론을 내야만 한다. 주님은 마지막 때에 고통이 더욱 증가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렇게 상황이 악화되어갈 때 우리가 더욱 조심해야 하는 것은 자칫 매스미디어가 조장하는 인본주의적인 관점으로 빠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비극이 진행되는 동안 미디어는 사람들이 직면한 필요에 반응하며, 그들이 할 수 있는 한, 더욱 많은 충격과 슬픔의 이야기들을 실어 나른다. 우리 눈앞에서 수없이 많은 비통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그러나 그것들 중 어느 하나도 하나님의 관점으로부터 온 것은 없다. 이 모든 것은 세속적인 관점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바로 이것을 조심해야 한다.


그분께 가장 큰 재앙은 인간이 구원받지 못한 상태로, 심판과 영원을 준비하지 못한 상태로 죽는 것이다. 만약 재앙으로 인해 인간이 하나님을 찾고 또 영원한 구원을 얻게 된다면 그분은 기꺼이 이 땅에 큰 지각변동과 혼란을 일으키려 하실 것이다. 이와 같은 주님의 뜻은 ‘인본주의적인’ 미디어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이 볼 때 재앙은 그저 총체적인 ‘인간적인 비극’일 뿐이며, 그들은 영원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 우리는 마지막 때가 가까워옴에 따라 요한계시록에 계시된 실제적인 심판에 들어서고 있다. 이러한 인본적인 관점들은 앞으로도 우리를 더욱 미궁에 빠지게 할 것이다. 만약 재앙을 인간적인 비극으로만 생각한다면, 우리 역시 쉽게 동일한 그물에 걸리게 될 것이다.


우주에서 가장 큰 재난은 인간이 구원받지 못한 채, 영원을 준비하지 못한 채 죽는 것이다. 그것은 최악의 시나리오다. 재난을 인간적인 관점으로 해석하게 하는 인본주의적인 매체에 우리 자신을 몰두하게 할 수는 없다. 우리는 인본주의적 관점이 아닌, 반드시 하나님의 관점을 취해야 한다.


‘우는 사람과 함께 울라’ 재앙 앞에서 우리는 깨지고 상한 사람들을 향해 마음을 닫아서는 안 된다. 예수님께서는 우셨고 우리도 마땅히 그와 같이 해야 한다. 그러나 언제나 더 높은 영원의 관점을 유지하자.


다시 나는 크라이스트처치에 있는 친구들과 지구촌 전역에서 최근 재난을 맞은 모든 이들에게 사랑과 눈물을 보낸다. 크라이스트처치는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곳 중 하나였고, 우리는 우리에게 친근한 많은 사랑스런 친구들이 있었다. 하나님께서 이런 황폐한 시간에 있는 여러분 모두와 함께 계시길 바란다. (출처:복음기도신문)


기사제공 : 기도24365 (본부)  prayer@prayer24365.org  

 

posted by 하나님의 사랑 알바니아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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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03 21:52 배우며...주님과

24시간 기도하는 자세로 살아야 한다.

오늘 하루 나는 얼마큼 주님의 임재속에 살았는가?

주님은 한순간도 나를 버리지 않으신다.
다만 내가 주님을 버릴 뿐이다.

급하고 힘들 때만이 아니라 평안할 때도 기쁠 때도 항상 주님을 의식하라.
그것이 주님의 능력, 지혜, 사랑, 모든 것을 공급받는 비결...

악인은 열매를 맺지 못한다.
의인은 외형뿐 아니라 내면의 진실한 열매를 맺는다.
주님은 열매맺지 못하는 나무를 찍어버리겠다고 하셨다.

우리는 주님을 붙잡지 않고는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존재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다.

열매맺는 나무의 원리는 - 시냇가에 심은 나무

주님의 열매는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것...
인간적으로 애써서 되는 것 아님...사랑하라. 용서하라..부지런하라..노노노...
내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주님께서 역사하셔서 이루어지는 결과물...

주를 붙잡아라.
주를 바라보라.
눈을 주님께 돌려 영광의 주를 바라보라...
오직 이것..

우리가 해야 할 유일한 것은 계속 주를 붙잡는 것...

주를 만지고 알기 원합니다.
주를 먹고 마시기 원합니다.

억지로 힘들게 살지 말고
계속 주의 이름을 부르고 구하라.

자신에 대한 관심의 초점에서 벗어나라.
그래야 주를 바라볼 수 있다.
자기에게 몰두하고서는 주를 바라볼 수 없다.
내 감정 내 기분을 버리고 나는 죽고 그리스도가 살아야 한다.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골로새서 1:27

나는 그리스도로 산다.
나는 주의 힘으로 산다.
주를 바라봄으로 산다.
주를 의지함으로 산다.
내 지식과 열정과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오직 나는 그리스도로 산다.
옛 사람의 나는 죽었고 이제 나는 그리스도로 산다.

나에게는 소망이 없다.
나에게는 성질과 더러움이 있다.
그러나 예수께 모든 것이 있다.
예수님만이 나의 하나님 나의 왕이십니다.
할렐루야!

실패하고 성질냈을 때
죄를 지었을 때
절망할 것이 아니라, 징징 거릴 것이 아니라.
오,
죄송합니다.
또 잠시 주님을 붙잡지 않았어요.
그러니 넘어지는 것이 당연합니다.
용서해 주세요.

나는 왜 이럴까 가 아니라
나는 원래 이래 하면서
주님을 빨리 붙잡으라..
문제는 연결이 끊어진 것이 문제...

마음의 불안, 두려움, 짜증이 올라올 때
오, 주님 또 연결이 끊어졌네요..
하고 주를 부르라.
계속 끊임없이 주님과 연결되어 승리의
풍성한 열매를 맺으라.

모든 생활속에서 항상 예배를 드리라.

인생의 많은 실패와 절망을 경험할 수록
자신에 대해서 절망하고 실망하게 되고,
주님을 놓치면 나는 끝장이구나...
하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되면
한 순간도 주님을 놓치고는 살 수 없게 된다.

내 안에 예수님이 사시기 때문에
모든 삶에서 순수하고 정결하게
예수만 드러내고 찬양해야 한다.
그럴수록 영혼이 더욱 업그레이드 되고
영광으로 가득해지고
천국의 기쁨을 맛보게 된다.

순결이란
주님의 영에 인간적인 것을 섞지 않는 것

나에게 아무런 가능성이 없음을 알고
오직 주를 바라보는 것.
그것이
순결함 이다.

인간적인 것이 들어가면,
사람의 것이 들어가면 안된다.
순수하게 주께서만 임하시고 역사하시고
주님의 이름만 높임 받고
주님만이 우리의 목표가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순결함....

그때 하나님의 나라, 천국이 이 땅에 임하는 것.

평생 동안 나를 버리라...

주님이 나를 쓰시는구나.
나는 괜찮은 사람인가보다
하는 마음이 들어오면 안된다.

조금이라도 내가 낫다고 생각되거나.
조금이라도 내가 잘난 느낌이 들면 안된다.
그순간 순결함은 깨어지고
주님의 영광은 소멸된다.

나는 죽고 오직 예수로 사는 철저히
자신을 낮추고
버리고 주님만 바라보라.

우리안에 있는 절망이
주님께 대한 갈망으로 변화되기를...

나에 대해 포기하고
주님께 대한 갈망만 더 증가되기를...

우리 안에 주님께 대한 갈망이 더욱 충만해지는 한해 되게 하소서...
우리를 지배하시고 정복하시옵소서...
우리의 몸과 영혼 모든 것이 오직 주님께 함몰되게 하소서...
모든 영광 받으소서...
주님을 찬양합니다.

<삶을 변화시키는 생명의 원리 중에서 > 정원목사님
posted by 하나님의 사랑 알바니아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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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01 23:05 배우며...주님과

"내 교훈은 비처럼 내리고

 내 말은 이슬처럼 맺히나니

연한 풀 위의 가는 비 같고

 채소 위의 단비 같도다."

(신명기 32:2)

풀에게 필요한 것은 이따금 쏟아지는 폭우보다

매일 규칙적으로 내리는 이슬비다.

-매일성경 표지 신간 광고

 샤론 제임스의 "연한 풀 우의 가는비"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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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28 06:54 배우며...주님과

하와는 선악과를 물끄러미 쳐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것을 먹었습니다.
그러자 그녀의 의식과 가치관과 그 모든 것에
많은 악한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쳐다보든
그것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눈을 지키는 것은 마음을 지키는 것이며
눈을 빼앗기는 것은 영혼을 빼앗기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시대의 사람들은
마치 로버트처럼 동물처럼 살고 있는데
그것은 그들이 그들의 눈을 빼앗기고
의식을 빼앗겨서
그 눈을 통하여 어두움의 기운이 들어와
사람들을 사로잡고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원목사님 <주님은 생수의 근원입니다.> 중에서


인터넷이 생명의 복음이 증거되는 거룩한 통로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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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25 15:28 배우며...주님과

십자가
그 길
주님께로 향하는
주님께로 갈 수 있는
십자가 외에는 없네.

오직
십자가
그 길을 통해
사랑하는 주님을
만날 수 있네.

결혼
이 또한
십자가를 통해
그 신비를
알 수 있다네.

하나님의 신비
십자가의 도

십자가를 통과했나
아니 아니
날마다
가는 길이라네

어제 가고
오늘은 아닌 그 길이 아닌
날마다
오르는 곳이라네

왜 자꾸 잊어버리는가?
이 미련한 자여!

네 힘으로
갈 수 없으니
주님이 대신
가신 것이지...

주님께 불가능은 없으니
걱정마
미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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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23 13:23 배우며...주님과

주님! 도와주십시오.
신실한 사람도 끊어지고,
진실한 사람도 사람 사는 세상에서 사라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서로서로 거짓말을 헤대며,
아첨하는 입술로 두 마음을 품고서 말합니다.

주님은, 간사한 모든 입술과 큰소리 치는 모든 혀를 끊으실 것이다.
비록 그들이 말하기를 "혀는 우리의 힘, 입술은 우리의 재산,
누가 우리를 이기리요."하여도,
주님은 말씀하신다.
"가련한 사람이 짓밟히고
가난한 사람이 부르짖으니
이제 내가 일어나서 그들이 갈망하는 구원을 베풀겠다."

주님의 말씀은 순결한 말씀,
도가니에서 단련한 은이요,
일곱 번 걸려 낸 순은이다.

주님, 주님께서 우리를 지켜 주십시오.
지금부터 영원까지,
우리를 지켜 주십시오.
주위에는 악인들이 우글거리고
비열한 자들이 사람들 사이에서
높임을 받습니다.
(시편12편)

"다니엘!
이리와.
안돼.
하지마.
말 좀 들어라.
엄마좀 하자.
제발!
제발!"

내 삶은 하나님의 말씀과
그분의 권위에 지배를 받지 않고 있었다.

다니엘에게 제발 내 말좀 들어라.
사정하는 나의 모습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일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내 혀가 더 권위가 있다.
내 입술이 더 권위가 있다.

성령의 인도와 통치보다

내 안의 조급함이
그것이 복음의 열정인 양 착각했다.
성령께서 변화시키실 것을 기대하는 마음보다
내 입술의 말이 더 능력이 있다고 늘 속아넘어간다.

내 안의 조급함
예수님이 주인되심을 거부하는 타락한 본성
주님이 내 안에 진정한 주인 되시도록

주님!
내 마음을 새롭게 하시고 새롭게 하소서.

Na shpëto, o Zot,
sepse njerëz të perëndishëm ka më pak
dhe besnikët janë zhdukur ndër bijtë e njerëzve.

Secili gënjen të afërmin e tij dhe
flet me buzë lajkatare e me zemër të dyfaqshme.

Zoti i preftë të gjitha buzët ljkatare dhe
gjuhën që flet me krenari,

të atyre që thonë
Me gjuhën tonë do të sundojmë
buzët tona na përkasin neve
kush është zot mbi ne?

për shkak të shtypjes së të mjerëve
dhe të britmës së nevojtarëve,
tani do të çohem
thotë Zoti
dhe do ti shpëtoj nga at që u zënë pusi

Fjalët e Zotit janë fjalë të pastra,
si argjend i kulluar në një furrë
dheu, i pastruar shtatë herë.

Ti, o Zot nga ky brez përjetë.

Të pabesë sillen pa u ndëshkuar
kudo kur midis bijve të njerëzve
lavdërohet e keqja.

posted by 하나님의 사랑 알바니아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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